조각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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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이미 내 친구—아이리스와 꾸몽—은 좀비가 된 지 오래고 이 주변에 남은 인간이라곤 나밖에 없다. 나는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도시를 걸어다닌다. 누군가라도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있을까.

 저기 사람 한 명이 보인다. 저 분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해야지. 사람을 본 게 이 얼마만인가. 걷고 걸어 저 사람이 나를 식별할 수 있는 위치까지 다가갔다. 맙소사. 저 사람이 나를 보고 나한테 방아쇠를 겨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다운 생활을 하지 못해서 내 모습이 사람이 아닌 좀비처럼 보이는 걸까. 그래도 좀 더 다가간다. 이번에는 아예 사격 자세를 잡는다. 당장이라도 저 총을 쏠 것만 같다. 아무 무기도 없는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이건 불합리하다.

 저 인간과는 접촉하길 포기했다. 왜 저 인간은 자신의 동족과 협력하기를 피하는 걸까. 그래도 괜찮다. 남아 있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어딘가엔.

 어, 찾았다. 저기 인간이 있다. 이번에는 성공하겠지. 조심조심 저 인간이 나를 보지 못하게 몸을 숨긴 채 다가간다. 이제 인간이 바로 눈 앞에 있다. —서프라이즈— 나를 본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놀란 표정은 산산히 부숴지고 경멸의 표정으로 바뀐다. 재빨리 총을 잡고는 냅다 나에게 갈긴다.

 나는 움직임이 굼떴다. 그가 쏘는 총알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나의 가슴에 박혔다. 천천히 붉은 피가 나의 몸에서 솟아났다. 쓰러진 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은 이것이다.

 “무슨 일이야. 각별!”

 “아, 내가 마플을 쐈어…. 너도 마플 좀비 된 건 기억하지? 분명히 좀비가 되고 나서, 풀어준다고 좀 멀리 풀어줬는데 다시 돌아온 모양이야…. 이 녀석. 아이리스나 꾸몽보다 더…”

 각별은 침을 삼켰다.

 “똑똑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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